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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부엌 - 이이체

nuninop 2017. 10. 14. 15:33

추락한 부엌 - 이이체



이곳은 매우 슬프고 아늑하다. 비행운이 없이도 날 수 있는 하늘의 귀퉁이다. 휑뎅그렁한 부엌이라고 해도 좋다. 이건 포크고 이건 의자고. 그런데 왜 이렇게 텅 빈 거지. 이어폰을 끼우지 않은, 네가 억지로 밥 먹는 소리. 나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청회색 정서가 싫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넘치는 이야기들, 그 축축한 식도락. 부엌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시에 담고 너에게 포크로 자르기를 요구했었지. 미안해요. 나는 발자국도 없이 가벼운 사람. 무단투기된 언어들이 하필이면 부엌으로 몰려만 가는가. 지구의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정말로 입술이 찢어지도록 아려오는 일, 경련이 일어나는 웃음. 우걱우걱 구겨 넣는 밥 한 숟가락은 비행기 안의 멀미만큼 어지럽고. 하늘에서 구름조각들을 잡아다가 먹어본 일이 있다. 그것은 폭설이 내리기 전날이었고, 어려운 사연들처럼 발자국들을 무겁게 내렸지. 시궁창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다리를 감싸고 있다. 노래로 감출 만한 슬픔들을 거울에 비춰보고 싶다. 모든 비행기들은 지구의 한 조각만을 떠돌 따름이고. 무모하게 눈부신 내 사랑, 미안해요, 같이 만져요, 너를 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을 느낀다. 고개를 수그린다.



​이 시는 예전 어디선가 웹툰을 보다가 ​​무모하게 눈부신 내 사랑, 미안해요 라는 구절이 와닿아 찾아낸 시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시라고 느껴집니다. 때론 이 시를 읽으면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져 읽기 싫을 때도 있지만 표현들이 아름다워 끊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모하게 눈부신 사랑
​이라.. 묘한 표현이네요..

​(죽은 눈을 위한 송가라는 이이체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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